내가 선택한 길임에도 눈물이 나는 이유를 나는 알 수 없다. 눈이 부실정도로 수 많은 별들이 하늘을 수 놓고 있다. 요 근래 서울에서는 볼 수 없던 광경이다. 하늘은 마지막 가는 나의 길을 환영이라도 하는 것일까? 그래.. 세상의 쓰레기는 사라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사라짐으로서 깨끗해지는 이 세상에 대한 기쁨의 표시일지 모르겠다.
의식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이 죽기 전 단 1분 동안에 자신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고 한다. 나의 의식은 점점 희미해지며 내면에 있던 희미한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난 달리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닥쳐오는 위험을 피해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돼서 난 그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들은 가녀린 내 팔을 잡고 때리기 시작한다. 얼마 되지 않아 내 몸은 피투성이가 됐으나, 그리 큰 고통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맞는 것이 익숙해진 모양이다. 그 이전의 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살아왔으며 또 왜 달리고 있었으며 왜 맞고 있는 것인지...
또다시 내 의식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난 지금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다. 그 안에서 며칠은 되어 보이는 썩은 빵을 찾아내었다. 빵 안에선 구더기가 기어 다니고 있다. 하지만 난 천천히 그 빵을 입으로 집어넣고 있다. 구역질이 나지도 않는지 너무도 급하게 씹지도 않고 입속으로 처넣고 있다. 빵을 가지고 있는 내 팔을 보아하니 이상하게 굽어 있다. 아무래도 한번 부러진 다음 치료하지 않아 그대로 붙어버린 모양이다. 아픔은 느껴지지 않는다. 어긋나 붙어 버린 지 꽤 오래되는 모양이다. 빵을 다 먹은 뒤 다른 쓰레기통을 찾아 걸어갔다. 다리를 저는 것을 보니 다리 또한 어긋나 버린 것 같다. 골목 끝에 있던 쓰레기통 까지 가기도 전에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몸 속에서 쓰레기들은 받질 못하는 것 같다. 계속 구토가 나온다. 지금까지 먹 아까운 것들을 다 토해내 버렸다.
아까운 것? 아까운 것? 어떻게 쓰레기가 아까운 것이 된단 말인가? 내가 한 생각에 내가 놀라고 말았다. 내가 누구인지 기억나지도 않는다. 이전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과연 난 누구란 말인가.. 죽을 것 같이 올라오는 내 위속의 물질들은 시큼한 위액까지 뱉어낸 다음에도 계속해서 구토는 나오고 있었다.
세상이 빙빙 돌기 시작한다.
또다시 내 의식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난 지금 한 공원의 벤치에 앉아 있다. 노숙자를 위한 보호 시설에서 제공하는 국수 한 그릇을 게 눈 감추듯 마셔 버린 지 이틀이 지났다. 이곳 벤치에서 먹고 자면서 공원에 찾아오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있다. 날씨가 춥지 않아, 공원으로 가족 단위로 산책을 많이 나왔다.
어린아이는 부모의 손을 잡고 즐거운 듯 웃고 있다. 두 손을 꼭 잡은 한 연인 또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며 살며시 웃고 있다.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서늘하다. 주위에서 새들을 울고 있고, 풀벌레 소리도 들려온다. 모두들 즐거운 듯이 웃음을 머금고 있다. 눈이 시릴 정도로 맑은 빛이 그들을 감싸고 있는 듯하다. 그들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과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만 제외하면 이곳은 어둠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듯하다.
괜스레 눈물이 나온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내가 예전에는 저러한 가정을 가졌는지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슴속에서 물밀듯 밀어 닥치고 있었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나는 끝을 알 수 없는 꿈속으로 다시금 스며들고 있다.
또다시 내 의식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사생아...’ ‘사생아.....’ ‘애비 없는 자식...’ ‘애미가 저지경이니 자식도 마찬가지지..’
어려서부터 많이 듣던 말들이다. 밖에 나가기만 하면 어른들에게 듣던 말이다. 그때마다 난 울며 돌아와 어머니께 매달렸다. 하지만 어머니께선 말이 없으시다. 단지 증오의 눈길을 담아 나를 쳐다본다. 단지 그뿐이다. 어머니께 위로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단지 어머니가 나에게 눈길을 줄 때는 이때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도 난 어머니께 달려간다. 그리고 매달려 본다. 지금 이 순간에만 어머니의 눈길을 받을 수 있기에... 그 눈에 무슨 뜻이 담겨져 있든지.. 그것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또다시 내 의식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돈을 훔쳤다. 어머니의 단칸방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는 자그마한 구멍가게가 있다.
주인아주머니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내 손은 열려져 있는 현금 통을 향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내 손에 2만원이 쥐어져 있었다. 집안에 있는 어머니는 말라 비틀어진지 오래이다. 죽은 것이다. 죽음, 죽음의 의미를 잘 모르겠지만 다시는 어머니는 말을 하지 않았다. 주위의 사람들은 관심이 없다. 어머니의 집에 사람이 찾아오지 않은지도 몇 년이 지났다.
이날 난 집을 나왔다. 어차피 나의 집도 아니었기에.. 훔친 돈으로 빵을 사먹었다. 지금까지 먹어본 빵 중에서 제일 맛있는 빵이다. 혼자 골목에 앉아 빵을 우걱우걱 씹고 있다. 갑자기 저쪽에서 어른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검은 손길이 몰려오고 있다....
난 지금 얻어맞고 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팔이 이상한 쪽으로 꺾여 있다. 이상하게 그리 많이 아프진 않다. 너무 많이 맞아서인지 일어설 수도 없다. 하지만 검은 손길들은 계속해서 나에게 다가 왔다. ‘이놈의 애미년이 우리 남편에게 꼬리를 쳤어..’ ‘니 애미가 우리집을 망쳤어..’ ‘아들도 사생아를 낳아 놓고 누구에게 꼬리를 친거야..’ 정신을 잃으며 들은 마지막 말이다.
또다시 내 의식은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부랑자 사이에도 격이 존재한다. 팔병신 다리병신인 나는 부랑자들 사이에서도 최하급에 속한다. 많은 일을 시작해봤지만 나의 몸 상태는 오랫동안 일을 지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 자동적으로 난 거리의 부랑자가 됐으며 이곳 사람들은 날 ‘팔다리’ 라고 부른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버리고 간 잡지, 신문을 주어 하루하루 돈을 벌고 있다. 오늘도 그들은 ‘팔다리’ 인 나를 때리고 있다. 이유인즉슨, 부랑자 보호센터에서 배급하는 밥을 먹을 때 자신들 주위에 있었다는 것이다. 세상의 최하급이라 불리는 그들은 그들 중에서도 최하급인 날 학대하며 기분을 푼다. 그들은 바깥에서는 같은 일을 당할 지도 모르겠다. 너무 맞아서인지 내 의식은 다시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이곳에도 계급은 존재한다..... ’
예전에 처음으로 돈을 훔쳤던 그 곳... 그곳에 난 다시 와있다. 변 한건 전혀 없다. 같은 모습 같은 사람들이 주위를 맴돌며 바쁘게 지나갈 뿐이다. 오늘도 역시 주인아주머니는 수다를 떨다 밖으로 나갔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현금통은 또 열려져 있다. 또다시 내 손에는 2만원이 들려져 있다. 어릴 적 그때 샀던 빵을 사들고 한 건물로 오른다.
오르고 또 올라 옥상에 도달했다. 이곳은 나의 안식처이다.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이곳에 올라와 아래를 내려다보곤 한다. 이곳은 아래와는 다른 별세상이다. 아무런 제약도 위험도 느낄 수 없다. 그냥 자신들의 삶을 살아가는 아래 세상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 수 있다.
이곳에서는 내가 가장 높은 존재 이다. 인간을 지켜보는 신의 기분이 이럴까? 그들의 행동하나하나를 지켜볼 수가 있다. 아까 사놨던 빵을 천천히 씹기 시작했다. 맛있다. 최고의 맛이다. 처음 그때와 같은 최고의 맛이다. 문득, 날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이미 날고 있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몸은 세상을 향해 다가가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엔 세상에 다시 도착했을 때에는 아픔을 느끼진 않을 것이다.